작은 궁궐, 운현궁
고종은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 흥선군을 ‘대원군’으로, 어머니 여흥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봉작(封爵)했다. 그리고 대원군 궁의 면세 전결 1,000결에 대한 토지 값으로 은 2,000냥을 실어 보내고, 궁장(宮庄, 궁에 소속된 논밭)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국가에서 콩 100석과 선혜청에서 쌀 100석을 5년 동안만 실어 보내라고 했다. 이듬해에는 호조에서 집을 수축하는 비용으로 17,830냥을 보내 운현궁을 새로 건축하고 수리하게 한다.
《매천야록》에 의하면 “터를 다시 넓히고 새로 단장하여 주의의 담장이 수리(數里)나 되었고, 네 개의 대문도 설치하여 대내(大內)처럼 엄숙하게 했다.”고 하니 그 규모와 화려함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운현궁의 규모가 커진 이유는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다가 흥선대원군에게 정권을 넘겨주자, 대원군의 세력이 커졌고 그에 따라 운현궁에 드나드는 사람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2대 천자지지 자리에 묘를 써서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으며,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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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대부가의 건축물에는 사당, 사랑채, 안채, 별채가 있는데 운현궁에는 건물이 한 채 더 있다. 안채 이로당(二老堂)과 사랑채 노안당 사이에 있는 노락당(老樂堂)이다. 1864년에 지은 노락당은 운현궁의 중심 건물로 원래 안채였는데, 1866년 노락당에서 고종의 가례를 치른 뒤 고종이 방문할 때 사용하는 거처가 되었다. 그리고 1869년에 따로 이로당을 지어 안채로 사용했다. 이로당 뒤편으로는 별채인 영로당(永老堂)이, 운현 언덕에는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고종은 노안당과 노락당이 완공된 후 대왕대비와 왕대비를 모시고 운현궁에 나아갔고 은신군과 남연군의 사우에 차례로 전배하였다고 했으니 운현궁을 새로 지으면서 사당도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종손가인 이재원의 집(계동궁)에 은신군과 남연군의 사당이 있었으나 흥선대원군이 운현궁을 수리하고 새로 지으면서 따로 마련한 사당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후로도 고종은 운현궁을 방문할 때 여러 번 “경우궁에 나아가 전배(展拜)하고 남연군 사당에 두루 전배했다. 이어 운현궁에 문안했다.”고 했다. 즉, 순조 생모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을 참배하고, 은신군과 남연군 사당을 참배하고 나서 운현궁을 문안한 것이다. 이때 참배한 은신군과 남연군의 사당이 종가인 계동궁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운현궁에 있는 사당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운현궁의 사당에 대하여 〈운현궁: 실측조사보고서〉에서는 사당의 위치가 육사당 옆인데 흥선대원군의 사당인지 앞서 건립한 은신군, 남연군의 사당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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