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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산/월출산-제암산

월출산 단풍(2013-11-16)

월출산(2013-11-16)

이건 차라리 하나의 장엄한 수석(壽石)입니다.영산강 물길이 만든 영암의 너른 들판에 홀로 솟아 독립된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산. 거친 바위들이 첩첩이 겹쳐 마치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처럼 갈기를 세우고 있는 산. 밤마다 날카로운 갈기 위로 둥근 달을 토해 놓고는 그 빛으로 푸르게 물드는 산. 월출산의 형상이 그렇습니다. 전남 강진과 영암을 가르고, 동으로는 장흥, 서쪽으로는 해남 땅을 바라보고 있지만, 월출산은 온전히 영암의 것입니다. 사실 '영암(靈巖)'이란 땅 이름도 풀자면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이니, 그게 곧 월출산의 암봉을 일컫는 것이기도 합니다.월출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바로 이즈음입니다. 마지막 단풍이 절정을 넘어서면서 우수수 잎을 떨구고 있을 때, 월출산의 거친 바위들이 그려내는 선은 더 선명해지고, 아찔한 높이는 더 뚜렷해집니다. 대기까지 맑아진 지금이야말로 월출산이 한 해 중 가장 선명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는 때이지요. 월출산에 갑니다. 달이 솟는 암봉 뒤편에 비밀처럼 숨겨진 고요한 옛 절터를 들르고, 아홉마리 용이 노닐었다던 봉우리도 지나고, 끝내 아무도 찾지 못했다는 이상향으로 향하는 석문을 찾아나선 길.가을에 제법 이름난 산이라면 어디든 울긋불긋 행락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지만, 당당한 '국립공원'임에도 월출산은 더없이 한적합니다. 산행 인파가 좀 늘긴 했다지만, 이즈음에도 월출산에서는 제법 긴 종주능선을 온전히 제 숨소리만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답니다.

# 탄성과 감탄부호로 가득하다…월출산

전남 영암 들녘의 복판에 바위로 솟은 월출산은 그 우람한 풍모만으로도 그 앞에 선 이들을 단번에 압도한다. 남도 땅에서 들판을 앞에 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월출산은 영암 쪽에서 보는 것이 가장 빼어나다. 영암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은 봉우리마다 창과 칼을 들고 늘어선 기암괴석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월출산은 당당히 국립공원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의외로 올라본 이들이 많지 않다. 수도권에서 멀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고, 월출산이 다른 산의 무리들과 지맥을 잇지 않은 채 저홀로 들판에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거칠고 위태로워 보이는 압도적인 풍모에 주눅이 들어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한 이들도 없지는 않았겠다.

조선 전기 사림파의 거두였던 김종직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가 늦은 나이에 월출산을 찾아서 남긴 글이 이렇다. "뜬 인생 반 넘어 살도록 이름 들은 지 오래이면서 / 올라보지 못하였으니 세상일 바쁜 것이라." 그러나 세상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월출산 암봉들이 그려내는 선이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는 늦가을 무렵의 월출산은 빼놓지 말 일이다.

월출산은 암봉 사이사이의 활엽수들이 하나둘 낙엽을 내려놓고 나신으로 돌아가는 이맘때가 한 해 중 가장 아름답다. 늦가을은 월출산 봉우리마다 치솟은 암봉들이 하루하루 더 선명해지는데다, 대기가 청명해지면서 주위의 암봉들이 더 가깝게 당겨 앉는 때이기도 하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에 가진 것 다 버리고 전국을 떠돌던 김시습. 그가 월출산을 빼놓았을 리 없다. 그는 월출산을 두고 '호남에 제일가는 구름 같은 산'이라고 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미수 허목. 그는 중을 앞세워 월출산을 올랐던 모양인데, 희극(熙克)이란 이름의 중으로부터 철쭉나무를 꺾어 만든 지팡이를 건네받고는 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사례했으니 그 내용이 이렇다. "머리 풀고 나는 듯 신선 곁에 놀다가 내려와 만물과 함께 되는대로 살리라." 여기에다 이름 없는 영암의 선비가 지은 시구절 하나를 더해 본다. "층층이 솟은 산 이마 푸른 하늘에 대고 있는데 / 노을 비칠 때가 진정 아름다워라."

월출산에 한번 발을 들여놓게 된다면 이런 시구절이 절대 수다스럽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된다. 월출산의 빼어난 풍광에다 대면 오히려 이 글에서 옛 사람들의 겸양과 절제를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월출산을 올라본 이에게 글을 남기라 한다면, 반복되는 탄성과 감탄 부호 말고 다른 무엇을 적을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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