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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산/서울시 여행

길상사-심우장-최순우 옛집 가을산책

길상사-심우장-최순우 옛집 가을산책

1. 산행일 : 2021.10.30(토요일)

2. 유래 : 길상사-심우장-최순우 옛집 

3. 위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4. 등산코스/소요시간 :  한성대입구역-성북동성당-길상사-복자사랑 피정의집-심우장-최순우 옛집

                               (전체거리 6.85Km 예상시간 3시간 4분)

5. 특징/볼거리 :

 

길상사

 

서울 성북동 중턱에 위치한 길상사는 예전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로, 대원각 주인이였던 길상화 김영한님에게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던 대지와 건물을 시주 받아 1997년에 개원하였다. 역사는 짧지만 서울 도심권에 위치하여 내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쉽게 들러볼 수 있는 곳이며, 사찰체험, 불도체험, 수련회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도심문화공간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길상사에는 대중들의 정진 수행공간인 ‘길상선원’과 ‘침묵의 집’이 있다. 길상선원은 일반인들을 위한 상설시민선방으로 방부가 허락된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하며, 침묵의 집은 참선은 물론 음악을 통한 명상 등을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정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무소유, 영혼의 모음, 말과 침묵, 물소리바람소리,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을 저술하신 법정스님이 계신 곳으로도 유명하다. 파리에 길상사 분원이 있다. 또한 1997년 세워진 길상사는 역사는 짧지만 개원법회가 있던 날, 김수환 추기경이 개원 축사를 하였고, 2005년 5월 15일 부처님 오신날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님들을 초대하여 ‘길상음악회’를 통해 불교와 천주교의 종교를 뛰어넘은 만남을 갖기도 하였다. 또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가 직접 조각한 관세음보살상과 기독교 신자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기증한 7층 석탑을 보유하고 있어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성북동성당

 

 

 

길상사

 

 

복자사랑 피정의집

 

1946년 개성에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설한 방유룡 신부는 곧 이어 남자 수도회를 창설하려 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휴전 후 자신이 사목을 담당하고 있던 제기동본당에서 5명의 회원과 함께 이 수도회를 창설하고 1956년 12월에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 수도회의 창설이념은 순교자적 정신의 실천으로 더 완전한 신앙생활, 더 완전한 구원에의 참여, 자아의 성화(聖化)와 이웃의 성화에 노력하면서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한다는 데 있다.

창설 이듬해인 1954년 5월, 명동성당의 부속건물을 빌려 임시 수도원으로 사용하다가 다음해 7월에는 서울 성북동 현 위치에 본원을 건립하고 입주하였다.

이 해 수도회에서는 노기남(盧基南) 주교의 집전 아래 첫 서원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노기남 주교는 한국 교회의 순교 사적지인 새남터[沙南基] 관리를 이 수도회에 위임하였다.

그 뒤 방유룡 신부와 회원들은 시유지였던 이곳에 가건물을 짓고 공민학교를 운영하였으며, 1969년에는 그 부지의 소유권을 서울시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이에 다음해부터 새남터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였으나 재원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71년에 개원한 복자유치원의 운영권도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위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수도회에서는 지방 분원 설립을 계속 추진한 결과 1959년 8월부터 제주도 서귀포에서 밀감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1976년에는 이곳에 피정의 집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1961년에는 인천 만수동에 진출하였고, 1969년에는 경기도 이천에 분원을 설치하여 농장과 회원들의 공원묘지도 조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1964년에는 첫 종신서원식을 가졌고, 1965년에는 첫 사제를 배출하였으며, 1967년에는 수련소 겸 본원 건물을 신축하였다. 그러던 중 1981년 8월 새남터 분원이 정식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순교사적지 개발에 다시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1987년 9월에는 마침내 순교자 기념 성당을 완공, 축성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그 뒤 이 수도회에서는 1990년 이천 분원에 성안드레아신경정신과병원을 개원하고, 1993년에는 정신지체자들을 위한 양주의 인지의 집을 인수하였으며, 신학원을 개원하는 한편 본당사목·교육사업·출판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총장 신부 방학길(方學吉, 마르첼리노)과 39명의 신부·수사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만해한용운심우장

 

사적 제550호. 1933년, 김벽산(金碧山)이 초당을 지으려고 사둔 땅을 기증받아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사장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이 곳에서 1934년 첫 장편소설인 『흑풍(黑風)』을 집필하여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조선총독부가 위치하던 남쪽을 등진 곳을 택하여 북향의 집을 짓고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하였다.

총 112.99평의 대지 위에 17.8평의 건평규모로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다. 집의 구조는 정면 4간 측면 2간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이다. 우측 서재로 쓰던 우측 방에는 尋牛莊(심우장)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한용운은 만해(萬海)라는 호(號) 외에 필명으로 오세인(五歲人), 성북학인(城北學人), 목부(牧夫), 실우(失牛) 등의 이름을 가끔 썼는데 목부란 ‘소를 키운다’는 뜻으로, 곧 내 마음 속의 소를 키움은 왕생의 길을 멈출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즉, 심우장이란 불교의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 공부하는 인생을 의미한 것이다. 2019년 사적 제550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최순우 옛집 

 

부암동이나 통의동·창신동이 주목 받는다. 서울의 예전 풍경과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룬 까닭이다. 간혹 흑석동을 걷거나 사직동으로 숨어드는 이도 있다. 미개발지의 서울 전경이 고스란한 매력을 뿜는다. 성북동도 여전히 좋다. 예전부터 알려진 고즈넉한 동네지만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서울의 예스런 동네 가운데 손꼽을 만하다. 특히 역사 유적들이 많기로는 으뜸이다.

서울성곽을 비롯해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돈암장, 의친왕의 별궁정원 성락원, 국보급 문화재의 요람 간송미술관, 서울의 3대 요정에서 불교 도량으로 변신한 길상사 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차다. 그 하나하나의 공간이 결코 소소하지 않다. 서울을 이루는 독립된 명소로 소개해도 아깝지 않다.

보통 역사가 깊은 공간은 그저 보이는 유적에 그치기 쉬운데 성북동은 그 스펙트럼도 다채롭다. 간송미술관은 1년에 두 번 5월과 10월에 국보급 문화재를 무료 기획전시하고 수연산방은 전통찻집을 겸한다. 길상사는 불교의 도량이지만 시민들의 명상이나 자연의 쉼터로도 개방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 예술과 쉼이 고루 퍼져 있다. 성북동 골목에는 대사관저도 많다. 우연인지 악연인지 서울의 한적한 동네에는 늘 외국 대사관이나 대사관저가 자리한다. 산책 삼아 걷기에 좋다. 그러니 성북동의 풍요로움을 말해 무엇할까.

최순우 옛집도 성북동에 자리한다. 최순우 옛집은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 혜곡 최순우의 집터다. 그는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가 집필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교본이 되고 있다. 이 역시 최순우 옛집에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