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산 삼막사 산행
1. 산행일 : 2022.11.27(일요일)
2. 높이 : 삼성산(481m)
3. 위치 : 서울특별시 관악구
4. 등산코스/소요시간 : 관악역-생태예술공원-학우봉-삼성산국기봉(477m)-삼막사-경인교육대학교-관악역
5. 특징/볼거리 :
'삼성산'은 서울특별시의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금천현의 진산(각 고을을 진호(鎭護) 하는 주산(主山))이며, 관악산은 지금의 과천시 관문동 소재 온온사가 있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5리 지점에 있는 과천현의 진산이어서 두 산이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삼성산의 유래 또한 설이 구구하다.
보통 원효,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진하던 곳이 삼막사의 기원이며, 아울러 삼성산의 산명도 이 세 고승을 정화시켜「삼성산(三聖山)」 이라 칭했다는 설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인 아미타불과 그 왼쪽에 있는 관세음 보살 및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 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산중에는 삼막사를 비롯하여 염불암, 망원암, 안양사, 성주암(서울) 등의 사찰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1592)병조판서를 다섯 번이나 역임하고 후에 우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생전에 이 산에 올라 읊은 「차유삼성산운(次游三聖山韻)」이란 장시와, 일제강점기에 고백록(高百祿)의 시조가 전해진다, 또 일찍이 (900) 왕건이 금주, 과주 등의 고을을 정벌하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가다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지어 오늘날의 안양시명이 탄생되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삼성산 정상(481m)
안양예술공원음식문화거리,안양박물관
안양생태예술공원
안양사
전망대
학우봉
염불사
삼막사
삼성산 국기봉(477m)
비봉산,수리산
삼성산 정상(481m)
삼성산 정상(481m),관악산 정상(629m)
관악산 정상(629m)
삼막사남녀근석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인공을 가하지 않은 화강석 2기로 남근석은 높이 150㎝이고, 여근석은 높이 110㎝이다.
속전(俗傳)에 따르면,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원효(元曉)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이전부터 이미 이 바위들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한다. 이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 두기를 원하고 순조로운 출산과 일가의 번영, 무병 및 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4월 초파일과 7월 칠석날 등 이른바 깨끗한 날이면 경향 각지로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촛불을 켜고 또 삼색 과일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린다. 이러한 성기숭배 풍속은 선사시대 이래 현재까지도 무속·풍수신앙·동제·미륵신앙의 전통 속에 어우러져 이어지고 있다.
신기한 자연의 예술품인 남녀근석은 삼막사 칠성각 앞에 있으며, 풍화된 2개의 자연 암석으로 그 모양이 남녀성기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 부르고 있다.남근석의 높이는 1.5m, 여근석의 높이는 1.1m이며, 서로 2m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속전(俗傳)에는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17년(677)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부터 이 바위를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여 왔다고 한다.이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을 원하고 출산과 일가(一家)의 번영(繁榮), 무병 및 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하며, 4월 초파일과 칠월칠석날 등에는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이러한 성기숭배(性器崇拜) 사상(思想)은 다산 및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으로 선사시대부터 행하여 왔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고, 동남아지역과 일본에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삼막사마애삼존불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바위에 마애삼존불상을 새기고 전면(前面)에 걸쳐 누각식 목조전실(木造前室)을 구축하여 법당으로 삼았다. 현재 전실의 1층에는 아무런 시설을 만들지 않고 2층에 마애삼존상이 안치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구조는 석굴사원의 전실(前室)로 흔히 사용되고 있으므로, 이 유구는 석굴사원의 일종으로 생각할 수 있다. 큼직한 감실(龕室, 너비 250㎝, 깊이 200㎝)을 파고 여기에 삼존상을 돋을새김으로 새겼다. 본존상(높이 150㎝)과 협시보살상(높이 93㎝)은 다소 등신대(等身大)보다 큼직하게 새겨졌지만, 전형적인 조선시대 후기 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머리의 육계(肉髻)는 뾰족하게 표현되었고, 얼굴은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습)으로 평판적이지만 다소 양감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좁아진 어깨, 방형의 체구 등도 평판적으로 처리되어 조선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두껍게 나타내어 불상의 부피감을 감소시키고 있다. 간결한 옷주름 선은 도식적으로 처리되어 불상의 형태와 잘 대비되고 있다.
본존상은 두 손을 배에 대어 보주(寶珠)를 올려놓았는데, 이것은 치성광불(熾盛光佛)의 보륜(寶輪)으로 생각된다. 좌우협시보살상들은 일광(日光)과 월광(月光)이 표현된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 머리나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손 모습 등이 보살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삼존불을 날카로운 연꽃무늬 대좌가 받쳐 주고 있다.
본존불의 보륜수인과 좌우 보살상의 일광·월광상의 특징은 칠성각에 본존으로 봉안된 형식과 더불어 칠성(七星)의 본존불인 치성광삼존불(熾盛光三尊佛)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불화로서 치성광후불탱은 꽤 남아 있으나, 마애불상으로서는 극히 희귀한 예이므로 크게 주목된다. 뿐만 아니라 이 불상은 1763년(영조 39년)에 조성되었고, 이 전각은 1764년 창건하고, 1881년 중건되었다는 명문(銘文)이 불상 밑에 새겨져 있어 조선시대 불상 연구에 중요한 유물이다.
삼막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사지 寺誌〉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중건하고 관음사라 부르다가 고려시대에 왕건이 중수한 후 삼막사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1394년(태조 3)에 무학왕사가 머물면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한 것으로 인해 1398년 태조의 왕명으로 중건되었다.
그뒤에도 몇 차례의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며, 1880년(고종 17)에는 의민이 명부전을 짓고 이듬해에 칠성각 등을 완공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망해루·대방·칠성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마애삼존불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동종, 3층석탑, 거북이 모양의 석조 등이 있다.
삼막사 대웅전 안에 있는 조선 중기의 동종. 1625년 작. 높이 102㎝, 입지름 61㎝. 종의 정상부분에 2마리의 용이 서로 맞대고 있는 용뉴는 있으나 음통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에는 범자를 2줄로 돌렸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의 범종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이며, 밑에는 유곽을 4곳에 배치했다. 연당초 무늬로 장식된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있으며,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과 위패가 1짝으로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조성자의 이름과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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