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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산/수리-원미-남한

가을 무성봉 수리사 둘레길

가을 무성봉 수리사 둘레길

1. 산행일 : 2022.10.07(금요일)

2. 높이 : 수리산 (489m)

3. 위치 : 경기 군포시/안양시/안산시

4. 등산코스/소요시간 : 수리산역~무성봉~속달정~수리산도립공원 탐방안내소~수라사~꼬깔쉼터~병목안산림욕장~수리산성지~병목안시민공원

 5. 특징/볼거리 :

전통 패턴이 바뀐 예측 불가의 날씨로 곤혹스러운 계절, 좋은 날을 만들기 위해 절로 향하는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차단기를 지나 군포 2경으로 불리는 수리사를 오르는데 지난 폭우로 쓸려간 돌들이 길 옆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로 흙과 시멘트 간격이 드러나 있어 붕괴 두려움도 일고, 마르지 않은 숲에 갇힌 게 답답해 한바탕 폭포수라도 쏟아낼 듯한 음험한 기운에 움찔한다. 그래서 주문을 외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사 가는 길이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어린 시절 소원을 이루고 싶을 때 마법처럼 입에 담았던 문장이 〈천수경〉 첫 구절이라는 걸 안 뒤 아무 때나 꺼내지는 못 한 것 같다. 나 편하자고 막말로 악업을 짓는 자에게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극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장애다.

그래도 관심사라고 나무를 주의 깊게 보니 서해안에서 잘 자라는 비목이 잎을 번들거리고 있다. 군포(軍浦)에 포구의 포(浦) 자가 있으니 배가 드나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온전한 내륙은 아니라는 지형 파악이 이어지는 가운데, 염색을 한다는 모시풀도 보고, 속명이 seoulensis(서울의)인 토종 식물 가는장구채도 신명나게 꽃을 피우고 있고, 꽃망울 자태가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가는여뀌에 눈길을 주다 보니 석축 위 하늘같은 일주문이 부처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걸 알려준다.

높이 489m의 수리산 남서쪽 중턱에 자리한 수리사는 문화체육부 지정 전통사찰 제86호이다. 신라 진흥왕(540~576년) 때 창건되었다고 하니 천년이 넘은 고찰이다. 당시 왕손인 운산대사가 ‘몽불수기(夢佛受記)’ 그러니까 부처님을 친견하고 당대에 반드시 부처가 된다는 기별을 받아 견불산(見佛山)이라고 오랫동안 부르다가 수리사(修理寺) 이름을 따서 수리산이 되었다는데, 군포 이름 유래처럼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수리산과 수리사를 바로 연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인 수리사는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대웅전 등 36동의 전각과 12개의 부속암자를 지닐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다. 이후 홍의장군으로 불린 곽재우 장군이 절을 재건해 말년에 입산수도하였고, 근세에 들어 경허 큰스님께서 주석하시며 약 200여 명의 대중과 함께 선풍을 드날렸다는 곳이기도 한 수리사는 한국전쟁 때 또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수리사는 그 이후 모습이고, 현재도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일주문을 통과해 계단을 오르니 갓 쌓은 듯한 석축이 보이고, 옆길로 그곳을 지나야 대웅전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 걸음을 재촉한다. 그때 눈에 들어온 나무는 흙을 덮은 파란 비늘 위로 우뚝 솟은 은행나무인데, 가는 사이 감 같은 열매가 녹색 잎 아래 푸르게 익어가고 있는 게 마음을 잡아당긴다. 그래서 곧바로 나무껍질을 보니 감나무 같기도 하고 돌배나무 같기도 한데, 지나는 어르신이 나무를 보는 게 좋았는지 불쑥 말씀을 하신다.

“수리사가 자랑하는 고욤나무입니다. 한 3백년은 되었을 거예요.”

나무도 유한의 수명이 있는데, 3백년 되었다는 고욤나무는 난생처음이다. 들뜨면서도 즐겁게 살피는데, 조금 위에 있는 은행나무보다 키가 너무 작다. 오래 살았으면 고욤나무 최대 크기인 15m가 되어야 할 텐데, 절반에 못 미치는 것 같다. 그래서 연유를 물으니, “모르죠. 벼락을 맞았는지, 어땠는지”라는 답이 온다. 그래도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감보다 작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고욤나무는 아름답다. 밑둥 속이 썩어 비어 있어도, 그 위에 고목을 분해시키려는 하얀 버섯이 피어 있어도, 감나무의 대목, 감나무의 어머니 고욤나무는 눈물 나도록 빛난다. 우리가 달게 먹는 감나무의 감은 야생의 고욤나무를 오랫동안 개량해 만든 인공 열매이기 때문이다.

고욤은 순 우리말이다. 감나무를 한자로 시(恪)라고 쓰는데, 작은 감이 열리니까 소시(小恪)가 된다. 얕잡아보거나 귀여운 거를 예전에 ‘고’라고 해서 앞에 ‘고’가 붙었고, 뒤에 ‘욤’은 ‘어미’의 옛말이다. 이름에 이미 어머니가 들어가 있다.

고욤나무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연결되어 아프게 대웅전 경내에 들어서는데, 그 옆 꽃이 피지 않은 코스모스 무리에 불쑥 솟은 부모은중경 삼층석탑이 또 아프다. 가까이 갈까, 말까, 불효자는 먹먹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또 주문을 외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성취하소서’ 풀이는 어렵다. 그것보다 ‘좋은 일이 있겠구나, 좋은 일이 있겠구나, 대단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 지극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라는 풀이가 확 끌린다.

불효막심을 뉘우치고 뉘우쳐 이제부터라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면, 어머니가 불효자를 용서할까? 하산 길 포클레인이 묵직하게 지나가 숲가에 발을 디밀고는 빌고 또 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좋겠구나!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