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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산/수리-원미-남한

남한산성 청노루귀(2023-03-15)

남한산성 청노루귀

1. 산행일 : 2023.03.15(수요일)

2. 높이 : 남한산 (522m)

3. 위치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서울특별시 송파구 마천동

4. 등산코스/소요시간 :  

5. 특징/볼거리 :동문-제11암문(동암문)-지수당-남한산성교회-연무관-북문-연주봉웅성-성불사

 

남한산성 청노루귀 
 
그동안 영월 금몽암에서 만나온 청노루귀가 수도권인 남한산성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위치를 확인하고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에서 출발 남산산성을 올라  편도 5km 가까운 거리를 걸어 도착하였으나 
 
넘 빨리 온 것인지 개체수가 줄어든 것인지  땅바닥에 코를 박고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았지만 달랑 4개체가 보일 뿐으로 조금은 허탈하였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도립공원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남한산성은 넓다. 전체 넓이는 35.16㎢로 광주가 61%, 성남이 14%, 하남이 25%를 차지한다. 그만큼 많은 진출입로가 있다. 각 지자체는 자기네 지역을 지나는 남한산성 둘레길을 자랑한다.

산성 내 소나무 숲은 수도권 최대의 소나무 군락이다. 이 소나무 숲은 일제 강점기에 전쟁 물자와 땔감으로 무분별한 벌목이 이루어졌었다. 그래서 남한산성이 소재한 산성리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금림조합’을 결성해 소나무 숲을 가꾸고 보전했다.

남한산성은 1971년에 경기도 도립공원이 된다. 이후 성벽과 행궁 등 산성 내 문화재와 시설을 보수한다. 이를 발판으로 2014년에는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남한산성이 총 12.4km에 달하는 성곽이 잘 보존되고 있는 점,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성곽 축성 기술의 모습을 발달단계별로 볼 수 있는 점, 그리고 다른 산성들과는 달리 산성 내에 마을과 종묘·사직을 갖추어 유사시 조선의 임시수도로서 역할을 한 점 등이 그 등재 사유로 꼽혔다.

11월 초 어느 날의 오후, 남한산성을 관통하는 도로는 차량으로 붐볐다. 가을을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린 것으로 보인다. 산성을 일주하는 산책로와 등산로에도 사람이 많았고 산성 인근의 맛집을 가려는 차량도 많이 보였다.

성벽을 따라 놓인 길은 경사가 심하거나 돌계단이 높아 힘든 구간도 있다. 하지만 송파와 성남과 하남은 물론 멀리 북한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구간도 있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요즘에는 단풍까지 짙어져 가을 정취를 더해준다.

산성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난 암문과 옹성, 그리고 옛 군사 시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혹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나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을 미리 본다면 더욱 뜻 깊은 나들이가 될 것이다. 

 

 

청노루귀

 

동문

 

제11암문(동암문)

 

동문 옆으로는 또 하나의 암문(11암문)이 있다. 일명 시구문(屍柩門)이다. 천주교가 탄압 받을 때마다 남한산성으로 옮겨온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받아 300여명이 순교했다고 한다. 그 시신들은 돌보는 이 없이 이 시구문 밖에 버려지기도 하고 이 문을 통해 장사지내러 나갔기에 시구문이다. 남한산성 최초의 순교자는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발생했다. 신해박해(1791년) 이후 탄압을 받기 시작한 천주교도들은 각도의 오지로 숨어들었는데 제천 봉양(현 베론성지)으로 숨어든 이들 중 황사영(黃嗣永)이 있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큰형인 정약현의 사위이다. 북경교구 앞으로 조선의 천주교탄압 실정을 알리고 천주교탄압을 중지시킬 목적으로 비단에 백반으로 글을 써 글씨가 보이지 않게 쓴 백서(帛書)인데 청나라 사신 가는 일행편에 북경으로 보내려다가 발각됐다. 문제는 외국군대의 힘을 빌려 조선을 협박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무수히 많은 이들이 순교했다. 이 백서 원본은 현재 교황청에 보존되어 있다. 이때부터 천주교는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더욱 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 때의 일을 잊었는지 시구문은 봄볕 아래 평화롭다.

 

 

 

 

 

 

 

 

 

앉은부채

 

 

청노루귀

 

 

 

 

 

 

 

지수당

 

 

남한산성교회

 

남한산성 연무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겹처마로 초익공(初翼工)을 올렸으며 연등천장[椽背天障]에 마루는 우물마루이다. 기둥은 둥글며 네 기둥마다에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뒷벽은 널판벽으로 좌우측 널벽에는 널문이 3개씩 설치되어 있으며, 정면은 아무런 벽체나 문짝도 없이 개방되어 있는데, 원래는 장치가 있었으나 중간에 보수하면서 그 장식이 없어진 듯하다. 뒤편에는 1.5m 너비의 퇴(退)가 나와 있다.

무사들이 무기(武技)를 연마하던 곳으로, 건축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숙종 때 수어사 김재호(金在好)로 하여금 개수하게 하고, ‘연병관(鍊兵館)’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정조 때에는 수어영(守禦營)이라 하였으나, 보통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하였다.

지난날에는 여기에서 무술을 닦은 무사로서 기예가 뛰어난 사람은 선발되어 서울로 진출하였다고 한다. 지금 언저리에는 두 그루의 떡갈나무 고목이 창울한 모습으로 서 있어서 한층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중포

 

투석기, 신기전화차

 

 

 

 

 

 

연주봉 옹성

 

 

 

 

 

 

청계산

 

롯데월드타워

 

 

성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