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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산/인왕-북악-남산

백로 인왕산 등산코스

백로 인왕산 등산코스

1. 산행일 : 2023.09.08(금요일)

2. 높이 : 인왕산(338m)

3.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의 경계에 있는 산.

4. 등산코스/소요시간 : 수성동계곡-인왕천약수터-인왕산 정상-치마바위-석굴암-수성동계곡

5. 특징/볼거리 :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일제가 내건 미끼 중 하나는 조선을 근대적인 사회로 발전시켜주겠다는 사탕발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극복해야 할 문화로 매도하고, 민속 신앙을 미신으로 규정해 타파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돼버렸다.

일제강점기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왜곡은 현재까지도 온전히 바로잡히지 않았고, 잔재 또한 깨끗이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무형의 유산’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일상, 나아가 사회 전체의 의식세계와도 깊게 관계되어지는 만큼 그 중요성이 더해진다. 강제로 빼앗긴 문화원형을 복원하고, 되찾는 일이야말로 일제잔재 청산의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일제강점기 국가 제사의 축소와 변질

‘순종황제실록’에 따르면 1908년 7월 23일 국가 제례는 ▲제실(帝室)과 관련이 있어야 하며 ▲시의(時宜)에 맞지 않는 제사는 영원히 폐지하고 ▲합사하는 것이 옳은 묘사전궁(廟社殿宮)은 옮길 장소를 찾아 봉안토록 하고 ▲대제(大祭), 별제(別祭), 속제(俗祭), 삭망제(朔望祭)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은 생략하고 ▲신당(神堂), 아일(衙日), 고사(告祀)와 같은 것은 폐지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각종 제사의 규모와 횟수는 축소되고, 상당수의 제사는 폐지됐다. 조선의 왕족들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왕실 봉작제에 편입시켜 종묘제례는 이어졌지만, 형식적인 의례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926년 순종이 승하, 1928년 종묘에 부묘된 이래 종묘는 조선왕조의 상징성을 상실한 채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대한제국의 국가 제례 공간은 자연스레 의례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됐고, 일본 천황을 제신(祭神)으로 하는 조선 신궁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일제는 1898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주둔했던 왜성대(倭城臺)에 대신궁(大神宮)을 세웠으며, 1908년 남산에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1912년 조선신사를 세우기 위한 준비를 거쳐 1920년 5월 기공식, 1925년 10월 준공식을 치렀다.

이때 남산 중턱에 있던 국사당은 인왕산으로 옮겨졌고, 남산은 일본의 국조대신(國祖大神)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위한 제례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전통 유교 교육의 본산인 성균관의 경우 1911년 6월 15일 조선총독부가 경학원으로 개칭하면서 교육 기능을 없애고 문묘 석전 의례만을 유지시켰다. 그러니 일제강점기 성균관과 향교는 교육기관의 역할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만 남겨진 상태였고, 교육 기능이 없는 제사 기능은 후손이 끊긴 제사나 다름 없었다.

결국 문묘 대성전은 일제가 전국 향교를 통제하고 간섭하는 공식 통로가 됐으며, 조선인들에 대한 황국식민화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이용됐다.

그런가 하면, 관왕묘와 성황제 등 국가 차원의 공적 국행의례를 민간 지역의례로 바꿔 마을 제사로 전락시켰다. 마을굿의 형태로 진행되던 민간의 동제도 규제하면서 간단한 고사나 치성으로만 할 수 있게 했고, 도당굿은 도당제로 변했다.

 

 

수성동계곡

 

 

인왕천약수터

 

 

 

 

 

 

 

 

 

 

 

 

 

 

 

 

인왕산 정상

 

 

 

 

 

 

 

인왕산 치마바위 장희빈 기도터

 

 

 

 

 

 

치마바위

 

 

석굴암

 

 

 

 

 

 

수성동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