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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산/인왕-북악-남산

가을 북악산 둘레길

가을 북악산 둘레길

1. 산행일 : 2021.11.07(일요일)

2. 높이 : 북악산(342m)

3.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산 2-27 

4. 등산코스/소요시간 :  공원입구-삼청공원-말바위쉼터-숙정문-촛대바위-곡장-1.21사태소나무-북악산-창의문

                          

5. 특징/볼거리 :

 

문화재청은 2007년 북악산 일대를 사적 및 명승지 제10호로 지정하였다가 2009년 명승 제67호로 지정하였다. 명승 지정 명칭은 조선시대 도성과 도성 축성의 개념인 내사산(內四山 : 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보존의 의미를 되살리고, 조선시대 각종 고지도 및 문헌 등 사료에 전하는 ‘백악(白岳)’의 지명을 살리기 위해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정하였다. 즉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북악산이란 이름 대신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으로 회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북악산 일원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서울성곽(사적 제10호)과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유적(사적 제462호), 대은암(大隱岩)과 부아암(負兒岩) 등이 있으며, 한양의 후현무(後玄武), 북쪽 주산(主山)으로서 조선왕조가 도성을 정하였던 정치적 사상과 지형적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 :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는 서울 4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 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三淸公園)이 있고, 동쪽에는 숙정문(肅靖門)이 있다.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이다. 이 문은 1396년(태조 5)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다.

 

1968년 1·21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 개방 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2020년 11월 1일부터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 구간이 개방되었다.북측면 개방으로 서대문구 안산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중단없이 산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재청이 2009년 명승 제67호로 지정하였다.

 

 

 

 

 

 

마을 종로11번 삼청공원

 

삼청공원에는 정몽주와 어머니의 시조비가 있어 살펴보는 재미가 있으며 숲속도서관에서는 책과 함께 간단한 음료도 마실 수 있다. 봄철에는 화사한 벚꽃 아래로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고 가을날에는 단풍이 화사하게 물들어간다.

 

 

말바위 입구

 

 

말바위쉼터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고급 한정식 전문점입니다

 

 

말바위 안내소

 

출입증을 발부받아 북악산 둘레길을 거닐어 볼 수 있다. 이쪽 길은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으므로 호젓한 산책을 원한다면 와룡공원 방면으로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숙정문

 

본래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하였다.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위치하였다.

1395년(태조 4)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

이 문은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길이 매우 험하다. 또 성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를 따라 내려와 동소문(東小門 : 혜화문) 밖 경원가도로 나오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한양에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소문을 통과했지 숙정문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숙정문보다 동소문이 한양 출입에 훨씬 빠르고 편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문을 폐쇄해도 통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영구히 닫아 두었다. 다만 한재(旱災: 가뭄으로 인한 재해)가 심할 때에 이 문을 열고 넘뮨안 숭례문(崇禮門: 南大門)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북은 음(陰)이며 남은 양(陽)이라고 한다. 한재 때 양을 억제하고 음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1416년(태종 16)에 처음 시작하였다.

숙청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하고 있다. 그것은 이 문이 음방(陰方: 여자의 방위)에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문은 1504년(연산군 10)에 조금 동쪽으로 옮겨 세웠는데 이 때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건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76년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시에서 백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할 때 태조 창건 당시의 제도에 의해 문루를 건축하고 ‘肅靖門(숙정문)’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어느 때부터 무슨 이유로 숙정문으로 개칭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1523년(중종 18) 『중종실록』의 기사 이후 역대 각 실록에 모두 숙정문으로 기록되고 있어 숙정문이라 호칭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531년(중종 26) 북정문(北靖門), 1587년(선조 20) 숙정문(肅靜門)으로도 표기된 것을 볼 때,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다락 없는 암문(暗門)인 것이 특색이다. 항상 닫혀 있었기 때문에 흔히 숙정문 대신에 창의문을 북문이라고 하였다.

 

 

촛대바위

 

서울의 주산 북악산에 있는 촛대바위이다. 일제시대 수난을 겪었다. 일본놈들이 우리의 민족 정기를 끊는다고 이 촛대바위에 쇠말뚝을 박았다. 정말로 나쁜놈들이다. 天人共怒(천인공노)할 일이다. 생긴모양이 촛대 같다고 하여 촛대바위라고 한다. 섬나라 왜놈들이 쇠말뚝을 박는다고 하늘이 내린 우리 민족이 없어지겠는가?

 

 

배풍등 열매

 

줄기의 밑부분이 월동한다. 줄기는 가늘고 긴데 위쪽은 덩굴성이며 샘털이 난다. 유사종으로 잎이 갈라지지 않고 줄기에 털이 없는 것을 왕배풍등이라 하는데 제주도에서 자란다. 열매를 백영실귀목(白英實鬼目), 뿌리를 배풍등근(排風藤根)이라 한다. 빨간 열매는 직박구리 새가 잘 먹는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술을 담가 사용한다. 외상에는 생즙이나 달인 물을 바른다. 독이 있는 식물이므로 익은 열매를 어린이가 먹지 않도록 한다.

 

효능

주로 운동계와 신장병증을 다스린다.

관련질병: 간염(급성간염), 감기, 관절염, 관절통, 단독, 발열(신열), 옹종(외옹), 요도염, 종독, 중독, 청열, 풍, 학질, 해열, 황달

 

 

1.21사태 소나무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종로구 부암동 산2-4 북악산 서울 성곽길 백악마루와 숙정문 사이에 위치한 소나무에 15발의 총격전의 흔적이 남겨졌는데, 이 소나무를 일컬어 <1.21사태 소나무>라고 한다.

소나무의 총탄자국은 수지(樹脂)로 구멍을 메웠으며 붉은 색깔로 15개의 탄흔을 표시해 놓고 관람할 수 있게 해 놓았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북악산은 일반인 출입이 전면 통제되었다가 2007년 4월 일반시민에게 전면 개방되면서 관람이 가능해졌다.

 

 

북악산 정상

 

 

곡장

 

 

창의문안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