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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산/경상도 여행

구미 금오산(2016-05-21)

금오산 [金烏山](2016-05-21)

높이 : 977m
위치 : 경북 구미시 남통동, 칠곡군 북삼면

특징, 볼거리

경북 구미시와 김천시, 칠곡군에 걸쳐있는 금오산은 특이한 산세를 자랑한다. 정상 일대는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쪽은 칼날같은 절벽이 병풍을 이루고 있으며 산세가 가파르다. 정상부는 달이 걸린다는 정상인 현월봉(懸月峯), 약사여래의 전설이 담긴 약사봉과 보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 부근은 하늘로 비상하려는 새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 모습 같기도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외관이 장엄한 만큼 명소도 많은 금오산은 야은 길재선생과 고사리에 얽힌 전설로도 유명하다. 금오산의 명소로는 금오저수지, 채미정, 명금폭포, 도선굴 등이 있다.

197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관광시설이 골고루 갖추어진 명승지이다. 정상부근에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으며, 단풍의 명소로 일명 금강이라 불리우며 옛부터 경북 8경의 하나로 꼽혀왔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는 금조 저수지와 구미시가 보이고 경부 고속도로와 낙동강구비가 보이며 동쪽으로는 구미공업 단지, 북서쪽으로는 효자암, 제석봉, 국사봉이, 북쪽으로는 선산읍이 보인다.

산 정상의 금조산성 암벽밑에는 약사암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 기슭에는 고려 말 충신 길재를 추모하기 위하여 지었다는 채미정이 있다.

이밖에 북쪽계곡의 중턱에는 금오폭포와 도선굴이 있고 북서쪽의 거대한 암벽에는 마애불이 부각되어 있다.

인기명산 [64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려한 경관으로 가을과 봄 순으로 많이 찾지만 여름에도 인기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기암절벽과 울창한 산림이 조화되어 경관이 수려하며, 문화유산이 많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높이 38m의 명금폭포가 있으며, 정상부근에는 자연암벽을 이용해 축성한 길이 2㎞의 금오산성이 있음. 해운사, 약사암 등의 고찰과 금오산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선봉사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5호) 등이 유명하다

 

 

 

 

 

 

 

 

 

 

 

 

 

 

 

 

 

 

 

 

 

 

 

 

 

 

 

 

 

 

도선굴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고 하며,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최인재의 일선지(一善誌)에 근거하면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또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굴 아래 대혈사지 터, 현재 공원 주차장이나 백운재(白雲齋) 또는 경파정(景坡亭)이 있는 곳을 대혜 또는 다혈이라 부르니 대혈이라는 명칭과 무관하지 않다.또한 일선지에 따르면 넓이가 16, 높이가 15,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얽어 만든 집[構屋]이 두 칸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00~600명이 피난하였는데, 당시 바위틈에 쇠못을 박아 칡이나 등 넝쿨로 이동했던 상황이어서 왜군은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개통한 것이다.

 

 

 

 

 

 

 

 

 

 

 

 

 

 

 

 

 

대혜폭포

금오산(, 977m) 대혜골의 해발고도 약 400m 지점에 있는 폭포로, 높이는 28m이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포()라고도 불린다. 폭포 아래에 형성된 넓은 소()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즐기는 곳이라 하여 욕담() 또는 선녀탕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 1554~1637)의 문도들이 연중행사처럼 폭포를 찾아 목욕을 즐기고 시회()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폭포 옆 암벽에는 욕담()이라는 예서체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장현광의 문도 중 한사람인 김공()이 폭포 근처 도선굴 아래에 움막을 짓고 학문을 닦다가 새긴 것이라 한다.

대혜폭포 오른쪽으로 펼쳐진 절벽의 위태로운 벼랑길을 따라 가면 신라 말의 고승 도선()이 수행했다고 알려진 천연동굴 도선굴이 있다

 

 

 

 

 

 

 

 

 

 

 

 

 

 

 

 

 

 

 

 

 

 

 

 

 

 

 

현월봉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금오산(, 977m) 정상의 약사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으며, 1618(광해군 10) 간행된 <일선지 >, 1799(정조 23) 간행된 <범우고 >에 고찰()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종 때 편찬된 <영남진지 >에는 법당은 8칸으로 성내() 삼리()에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약사암은 약사전·삼성각·일주문·종각·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1985년 기암절벽 아래에 남향으로 건립한 약사전은 정면 4·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집으로 약사암의 중심법당이다. 내부에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935년 우상학이 지은 약사암중수기에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기 중 1기를 이곳 약사암으로, 나머지 2기를 수도산 수도암과 황악산 삼성암으로 옮겨 봉안했다고 쓰여 있다. 석조여래좌상 좌우로 일광·월광보살이 협시되어 있으며, 후불탱·신중탱·독성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요사채 왼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바위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5.5m의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거대한 암벽의 모서리에 조각된 마애석불, 불상의 중심선이 모서리여서 양쪽 암벽에 조각된 특이한 구도이다. 광배()대좌()를 모두 갖추었으며, 보존 상태도 비교적 좋다. 머리에는 3면보관()이 있으나, 마멸로 조각한 장식은 분명하지 않다.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입 등도 원만하게 처리하였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가 명확하게 나타났으나,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오는 형식적인 것이다. 어깨의 선은 매우 원만하고 자세도 좋지만, 가슴··하체 등은 둔탁하게 처리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였으며, 왼손은 팔굽을 약간 굽히고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자세로 옷자락을 잡고 있다. 발은 곧게 서 있으며, 발가락은 매우 크고 듬직하다.

입상() 앞면의 평평한 대지에는 현재 기둥의 초석이 있고 기와 조각들도 흩어져 있으며, 암벽 자체에도 목조 가구()의 흔적이 보이므로 사찰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일선지()기록으로 미루어 보봉사()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얼굴·신체·옷무늬·광배 등에서 9세기 보살상보다 더 발전한 형식화가 나타나 있으므로, 보다 후대의 작품으로 생각된다.